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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파란색의미와 네이비즘 / 베르나르 베르베르
    [book in book] with_a 2020. 7. 25. 21:28

    파란색


      오랫동안 파란색은 폄하되어 왔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파란색은 진정한 색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흰

    색, 검은색, 노란색, 붉은색만을 진정한 색으로 여긴 것이다. 염료 기술의 문제도 있었다. 염색공들과

    화가들은 파란색을 제대로 염착시키지 못했다.


      파라오 시대의 이집트만이 파란색을 피안()의 색으로 여겼다. 그들은 구리로부터 이 염료를 제

    조해 냈다. 고대 로마 시대에는 파란색이 야만인들의 색이었다. 그것은 아마도 게르만족 사람들이 유

    령처럼 으스스한 모습으로 보이기 위해서 얼굴에 청회색 가루를 바르고 다녔기 때문일 것이다.


      라틴어와 그리스어에서 <파랑>이라는 단어는 그 의미가 명확히 규정되어 있지 않았고, 회색 혹은

    녹색과 혼동되는 경우가 많다. <파랑>이라는 단어 자체가 게르만어 <블라우blau>에서 온 것이다.

    로마인들은 파란 눈의 여자는 천하며, 파란 눈의 남자는 거칠고도 어리석다는 편견을 지니고 있었다.


      한편 성경에서는 파란색이 언급되는 일이 드물지만, 푸른 보석인 사파이어는 가장 귀한 보석으로

    여겨진다.


      파란색에 대한 멸시는 서양에서 중세까지 이어진다. 빨간색은 선명할수록 더 큰 부의 상징이 된다.

    따라서 빨간색은 사제들, 특히 교황과 추기경의 옷을 물들였다.


      하지만 이러한 경향은 역전된다. 남동석, 코발트, 인디고 덕분으로 화가들은 마침내 파란색을 염착

    하는 데 성공한다. 파란색은 성모의 색이 된다. 성모는 파란색 외투나 파란색 드레스를 입은 모습으

    로 묘사된다. 이처럼 성모와 파란색이 연결되는 것은 성모가 하늘에 살기 때문이기도 하고, 파란색이

    거상()의 색인 검은색 계열로 간주되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전에는 하늘이 검은색이나 흰색이었으나, 이 시대에 와서 비로소 파란색으로 칠해진다. 녹색

    이었던 바다 역시 목판화 등에서 파란색으로 바뀌는 것을 볼 수 있다. 이렇게 유행은 바뀌어 파란

    색은 귀족들이 선호하는 색이 되며, 염색공들은 이 유행을 따른다. 그들은 서로 경쟁하며 점점 더

    다양한 종류의 파란색을 만들어 낸다.


      토스카나, 피카르디, 툴루즈 등지에서는 파란색 제조의 원료가 되는 식물인 <대청(靑)이 재배

    된다. 파란색 염료 산업 덕분으로 이 지역들 전체가 융성하게 된다. 아미앵 대성당은 대청 상인들의 기

    부금으로 이저진 것이다. 반면 스트라스부르에서 붉은색의 재료인 꼭두서니를 취급하는 상인들은 성

    당 건축 자금을 대는데 애를 먹는다. 이런 까닭으로 알자스 지방 성당들의 스테린드글라스는 악마를

    예외 없이 파란색으로 묘사하게 된다. 이렇게 하여 파란색을 좋아하는 지방들과 붉은색을 좋아하는 지

    방들 사이에 일종의 문화적 전쟁이 시작된다.


      종교 개혁 시대에 칼뱅은 검은색, 갈색, 파란색은 <정직한>색이고, 붉은색, 주황색, 노란색은 <정

    직하지 않은>색이라고 주장한다.


      1720년 베를린의 한 약사는 감청색을 발명하며, 이로 인해 염색공들은 파란색의 색조를 더욱 다양

    화할 수 있게 된다. 항해술의 발전 덕분으로 대청보다 훨씬 강력한 염착력을 지닌, 앤틸리스 제도와

    중앙아메리카의 인디고를 이용할 수 있게 된다.


      색의 세계에 정치도 끼어든다. 프랑스에서 파란색은 흰색의 왕당파와 검은색의 가톨릭파에 맞서

    일어난 공화파의 색이 된다. 또한 나중에 공화파의 파란색은 사회주의자들과 공산주의자들의 붉은

    색과 대립한다.


      1850년대 파란색의 위상을 결정적으로 드높인 옷이 등장하니, 바로 샌프란시스코의 재단사 리바

    이 스트라우스가 발명한 청바지이다.


      현재 프랑스에서 설문 조사를 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가장 좋아하는 색으로 파란색을 꼽는다. 유

    럽에서 스펜인은 붉은색을 선호하는 유일한 나라이다.


      청색이 아직 발을 붙이지 못한 유일한 영역은 음식이다. 파란 통에 든 요구르트는 흰색이나 붉은색

    통에 든 것보다 덜 팔린다. 파란색 음식은 거의 없다고 할 수 있다.


    네이비즘


      20대, 30대가 가장 선호하는 수트의 컬러는 네이비이다. 가장 무난할 것 같은 블랙도 아니고, 오랜

    전통을 자랑하는 그레이도 아니라 네이비다. 블랙은 아직도 애도를 표현할 때 입을만한 장례의 의복

    으로 통용되기 때문에 아마 조금 꺼려지는게 사실이다. 그레이는 전통의 역사만큼 어른 세대들에게

    유용한 컬러로 생각되기 때문에 네이비에게 한 발 밀린다.


      네이비가 왜 가장 인기있는 컬러를 생각해보면 가장 차분한 인상을 주기 때문이다. 블루가 주는 이

    미지 자체가 차가운 도시의 남자의 이미지를 풍기기 때문이다. 차가운 도시의 남자, 차도남은 성공의

    상징이기도 하다. 성공을 위해서라면 감성보다는 이성이 더 중시되는 사회에서 살고 있기 때문에 스

    마트를 대변하는 이성의 색인 네이비가 가장 인기있을 수 밖에 없다.


      청바지 사이에서도 파랑의 강도가 중간인 중청은 젊고 조금 더 케쥬얼한 맛이 강하다면 파랑의 강도

    가 진한 진청은 조금 더 무겁고 도시적인 분위기를 연출한다. 가공하지 않는 있는 그대로의 청색 원단을

    사용해 만든 청바지<셀비지 진>이 엄청난 인기를 누렸던 것도 그리 이상할 만한 일은 아니다.


      하지만 이제 그레이의 역습이 등장하고 있다. 디자이너 '톰 브라운'이 등장하면서 남성복의 한 획을 그

    은 그의 브랜드 컬러는 그레이였다. 그레이들을 다시 젊게 풀어낸 그의 디자인 덕분인지 이제 그레이는

    더 이상 어른세대의 전유물을 떠나고 있다. 허나 아직은 조금 더 걸릴 것 같다. 네이비가 이룩한 네이비즘

    을 이길 컬러는 아직은 나타나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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