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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판도라의 상자 / 베르나르 베르베르
    [book in book] with_a 2020. 7. 25. 19:59

    판도라


    판도라라는 이름은 그리스어로 <모든 선물을 받은 여자>라는 뜻이다. 


      제우스는 프로메테우스가 자기 뜻을 거역하고 인간들에게 불을 훔쳐다 주자 그 대가로 인간들에게 재앙을

    내리기로 했다. 그는 헤파이스토스에게 흙과 물을 섞어 여신처럼 아름다운 여자를 만들라고 명령했다. 헤파

    이스토스가 여자를 빚어내자 다른 신들은 제우스의 명령에 따라 저마다 여자에게 선물을 주거나 자기가 지

    닌 재능을 불어넣었다. 헤르메스는 여자의 마음속에 거짓과 속임수와 교활한 심성까지 담아 주었다. 그리하

    여 아름다움과 성적인 매력과 손재주와 언변 등을 고루 갖춘 여자 판도라가 세상에 나왔다. 제우스는 그녀를

    프로메테우스의 동생 에피메테우스에게 보냈다. 프로메테우스는 단박에 판도라를 의심했다. 겉으로 보기엔

    너무나 훌륭하지만 마음속에 거짓을 품고 있음을 알아차렸기 때문이다. 하지만 에피메테우스는 그녀의 아름

    다움에 홀딱 반하여 그녀를 아내로 맞았다.


      제우스는 그들 부부에게 결혼 선물로 상자 하나를 주었다. 그러면서 


    "이 상자를 받아서 안전한 곳에 고이 간직하거라. 하지만 미리 일러두건대, 어떠한 일이 있어도 이것을 열어

    보면 안 된다."


      하고 말했다. 에피메테우스는 사랑에 흠뻑 빠진 나머지 제우스가 주는 선물을 받지 말라는 프로메테우스의

    경고를 잊고 상자를 받아 자기 집 한구석에 숨겨 두었다.


      판도라는 남편과 함께 행복한 나날을 보냈다. 세상은 경이로웠다. 아픈 사람도 없고 늙는 사람도 없었으며

    모두가 선량했다.


      그러던 어느 날 판도라에게 궁금증이 생겼다. 신비한 상자 안에 무엇이 들어 있는지 알고 싶었다. 그래서

    판도라는 요염한 자태를 한껏 드러내며, 상자의 뚜껑을 열고 잠깐 들여다보기만 하자고 남편을 졸랐다. 에피

    메테우스는 제우스가 열지 말라고 했다면서 아내의 청을 들어주지 않았다.


      판도라는 상자를 열어 보자고 매일같이 성화를 부렸지만 에피메테우스는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어느 날 아

    침 판도라는 남편이 없는 틈을 타서 상자를 감춰 둔 방으로 들어갔다. 그런 다음 자물쇠를 부수고 묵직한 뚜껑

    을 들어 올렸다.

      

      판도라가 미처 상자 내부를 들여다보기도 전에 상자에서 무시무시한 울부짖음과 고통에 겨운 흐느낌이 새어

    나왔다. 판도라는 겁에 질린 채 흠칫 물러섰다. 그때 상자에서 증오, 질투, 잔인성, 분노, 굶주림, 가난, 고통, 질

    병, 노화 등 장차 인간이 겪게 될 온갖 재잉아 쏟아져 나왔다.


      판도라는 뚜껑을 도로 닫았다. 그러나 이미 온갖 불행이 인간들 사이로 퍼져 나간 뒤였다. 다만 상자 밑바닥에

    무언가 자그마한 것이 잔뜩 웅크린 채로 남아 있었다. 그것은 희망이었다. 그 뒤로 인간들은 갖가지 불행에 시

    달리면서도 희망만은 고이고이 간직하게 되었다.



    판도라의 상자가 아니라 <판도라의 항아리>



    판도라의 상자 라는 용어는 헤시오도스의 원문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에라스무스의 라틴어 번역 이후로 확립

    된 서구인의 상식에서 기인한다. 헤시오도스의 그리스어 원문에서는 상자라는 말이 나오지 않는다. 대신 단지

    나 항아리를 뜻하는 <피토스>라는 말이 나와 있다. 이것이 상자로 바뀐 것은 르네상스 시대의 위대한 인문학

    자 에라스무스의 영향이라고 한다. 그는 헤시오도스의 판도라 이야기를, 라틴어로 번역하면서 <피토스>라는

    단어를 <픽시스 (상자)>로 옮겼다. 유럽 언어들에서 공통으로 나타나는 <판도라의 상자>라는 관용구는 결국

    빛나는 오역(?)의 산물인 셈이다.



    에덴동산의 선악과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하시고 아담과 이브를 만들고 그들에게 세상 모든 것들을 다 주고서 마지막으로 한 일

    은 선악과를 따먹지 말라는 금기의 말이었다. 판도라의 상자나 선악과나 주지 않았으면 행복하게 세상을 누리

    며 기쁨으로 살았을 우리에게 시험을 준다. 이때부터 인류에게 시험은 시작되는 셈이다.


      그런 점에서 신은 우리에게 자유의지라는 것을 역으로 선물한 셈이다. 판도라의 상자를 여는 행위, 혹은 선악

    과를 따먹는 행위는 하지 말라고 한 금기를 깨는 행위이다. 금기를 깼을 때의 달콤함은 꽤 크다. 우리에게 아무

    것도 제약이 없는 자유의 사람으로 존재하기 때문이다. 자유의 사람, 성경에서 뱀이 하는 신과 같은 존재가 되

    는 것이다. 하지만 금기를 깼을 때 우리는 엄청난 후폭풍을 맞이한다. 선과 악을 안다는 것은 더 이상 순수성을

    벗어나 악을 깨닫게 된다. 선을 알려면 악을 알아야 하고, 악을 알려면 선을 알아야 하듯이 수치와 탐욕, 걱정과

    근심, 고난 등을 이해하면 그제서야 선이 무엇인지 깨달을 수 있다. 허나 신을 알지 않기를 바랬던 것 같다. 그런

    악의 속성을 깨닫지 않고 즐거움 속에 거하기를 원했을 것이다. 허나 신은 알고 인류는 모르는 것이 인류로서는

    싫었을지도 모른다. 신과 같이 모든 것을 깨닫기를 우리는 바랬던 것이다. 모든 악의 속성을 깨닫고 우리에게 죄

    라는 것이 들어왔다. 악이 없다면 죄가 없겠지만 악이 생겨나자 죄가 생긴 것이다.


      중요한 점은 판도라의 상자의 마지막 남아있는 희망에서 처럼 우리는 악의 속성을 모두 뒤엎을 수 있는 희망을

    안고 살아간다. 선과 악이 모두 공존하는 이 세상에서 신이 존재한다는 희망, 선이 존재한다는 희망, 그리고 악보

    다 선을 쫓을 수 있는 희망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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